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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유행성 확산

 

1. 오래된 콜레라의 기록: 기원전 300년 경

2. 7세기 중국과 17세기 자와섬에서 콜레라로 추정되는 악성 역병의 기록

3. 세계적인 대유행은 1817년에 캘커타에 생긴 유행성 콜레라로 아시아 전체로 확산, 아프리카에도 퍼져서 1823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일본에도 영향

4. 콜레라의 초기 지역은 인도의 갠지스강 하류의 벵골에서 방글라데시에 걸친 지역에서 발생

5. 1817, 인도에 새로운 병이 유행

6. 아시아에도 옛날부터 존재했었지만, 세계적인 유행성 확산을 나타낸 것은 19세기

7. 1826년부터 1837년까지 크게 유행하여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에 확산된 전 세계적인 규모 1840년부터 1860년, 1863, 1879, 1881, 1896, 1899, 1923년 총 8 차례에 걸친 아시아 형의 대유행

8. 1884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콜레라균이 발견되고 의학의 발전, 방역 체제가 강화됨과 동시에 아시아형 콜레라의 세계적 유행은 진정

9.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여전히 남아서 유행이 반복, 중국에서는 1909, 1919, 1932년에 대유행이 있었으며, 인도에서는 1950년대까지 모두 만 명 단위의 사망자 발생

 

엘토르 타입 콜레라

 

1. 1906년 시나이반도의 엘 토르(El Tor)에서 발견

2. 유행은 1961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하여 개발 도상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확산

3. 1991년에는 페루에서 대유행이 발생, 선진국에서도 산발적인 발생이 보고

4. 1992년에 발견된 O139균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유행을 했었지만, 세계 규모의 확대는 되지 않았다.

 

2000년대

 

1. 콜레라의 전염력은 지금까지 7차례의 세계적인 유행성 콜레라가 발생

2. 2006년에도 7전염이 되었고 2009129일 짐바브웨에서 유행 중인 콜레라 사망자가 3000명에 이르고,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

 

***  시간 이내에 건강한 사람을 시체로 만들 만큼 격렬한 설사와 구토를 유발

     사람들은 흑사병이 무서운 병이라고 하지만, 역사상 흑사병보다 더 많은 사람이 콜레라로 사망

     가난과 비위생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병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공중위생법과 공공 의료법이 만들어졌다.

     아직도 콜레라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기에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영국의 콜레라

 

1. 1854828일 영국의 수도 런던의 브로드 가에 아기 한 명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

2. 며칠 후부터 콜레라 환자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9월까지 무려 616명의 목숨을 앗아간 ‘브로드 가 콜레라 유행’의 시작

3. 콜레라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쌀뜨물처럼 보이는 설사를 심하면 하루에 20L 이상

4. 설사가 쌀뜨물 같은 이유는 소장 내부 조직이 다 벗겨져 나왔기 때문인데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사망률이 50%가 넘는 무서운 전염병이며 19세기만 하더라도 콜레라의 원인 밝혀지지 않았다.

 

역학의 탄생

 

1. 대다수 의사들은 나쁜 공기에서 나오는 ‘독기’가 원인이 생각하였으나 런던의 의사였던 존 스노는 콜레라의 원인을 직접 확인하였다.

2. 9월 초 존 스노는 동네 교회의 부목사였던 헨리 화이트헤드와 함께 환자의 집을 방문

3. 환자가 감염 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조사한감염지도’ 작성

4. 콜레라 환자 대부분이 브로드 가에 있는 펌프에서 물을 마셨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는 증거를 찾았다.

5. 존 스노는 동네 주민들을 설득해 98일 아침 브로드 가 펌프 손잡이를 떼어냈다. 오염된 물로 콜레라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6. ‘존 스노가 펌프 손잡이를 뽑아서 콜레라를 막았다’고 알려졌으나 사실 펌프 손잡이를 뽑아서 콜레라가 끝난 것은 아니며 콜레라 사망자 수는 그전부터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스노의 행동은 더욱 중요한 결과인 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7. 감염지도를 통해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면서 ‘역학’이라는 새로운 의학 분야를 만들어 냈다.

 

 

역학의 아버지 존 스노(1813-1858)/위키미디어

 

 

콜레라균 발견 

 

190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균을 발견하였다.

 

1876년에 역사상 최초로 예방이 가능한 박테리아성 질병인 탄저병이 탄저균(Bacillus anthracis)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 발견

1881년에는 한천배지 통한 순수배양(pure culture)을 처음 고안

1882년엔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발견

1885년엔 위장병의 일종인 콜레라를 일으키는 콜레라균(Vibrio cholerae)발견

 

대한민국 발병사례

 

20세기인 1960-1970년대에도 유행, 21세기에 들어선 2001년 크게 유행하여 162명의 환자가 밝혀졌다.

200410, 200516, 20065, 20077, 20168313, 20169184명의 환자가 보고되었다.

 

20101월 아이티 대지진

 

1. 지진으로 초토화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같은 해 10월에 파견, 아이티에서 구토와 설사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

2. 아이티에 낯선 전염병인 콜레라가 퍼진 원인: 유엔 평화유지군 때문이라는 추정이 유력

3. 유엔 평화유지군 중에 콜레라가 창궐했던 네팔에서 온 군인들이 있었고, 이들이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것

4. 당시 유엔군 주둔 기지에는 정화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서, 콜레라 박테리아가 강을 따라 아이티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

5. 콜레라 창궐은 전체 인구 1000만 명에 불과한 아이티에서 최소 1만 명이 숨지는 파멸적 결과

6. 유엔은 아이티 콜레라 박멸 사업에 나섰지만 열악한 위생 상태 등 때문에 콜레라 전염은 멈추지 않았다.

7. 2014년 이후 해마다 콜레라 발병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2011년 아이티 콜레라 희생자 유족 5000명은 유엔에 보상을 청원, 유엔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

8. 유족들은 미국 뉴욕 법원에 반기문 사무총장 등과 유엔을 대상으로 400억 달러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유엔은 외교관 면책 특권을 내세워 재판을 회피

 

뉴욕 타임스

 

1. 유엔이 일정 부분 태도를 바꾼 계기는 아이티의 콜레라 유행이 “유엔의 행동들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기밀 보고서 때문이며 반 사무총장에게 전달된 보고서는 미국 뉴욕대 법학 교수인 필립 올스턴이 작성했다.

2. 올스턴은 콜레라 발병에 대처한 유엔의 태도가 “도덕적으로 비양심적이고, 법적으로 방어할 여지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자기 패배적”이라고 지적

3. 유엔 특별보고관이기도올스턴 교수는 아이티 콜레라에 대한 유엔의 기존 태도는 “유엔의 신뢰도와 사무총장실의 통합력 모두를 약화시킨다”라고 지적

4. 유엔의 책임 부정과 희생자 보상 거부와 관련해선 “회원국에 인권을 존중하라고 주장하는 유엔이 이중잣대를 들이밀었다”라고 꼬집었다.

5. 유엔은 특별보고관의 보고에 구속되지는 않으나, 유엔 당국자들은 보고에 대한 답변으로 2016 104억 달러(4천534억 원) 지원을 결정하였다.

6. 2억 달러는 피해 주민과 지역사회에 현금으로 지원하고 2억 달러는 콜레라 근절 프로그램에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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