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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의 연구

 

현미경/픽사 베이

 

결핵 연구는 의학전범을 저술한 이븐 시나가 살던 10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븐 시나는 폐결핵을 감염병으로 인식한 최초의 의사였으며, 당뇨병과의 관련성을 주목한 것도 최초였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감염병은 공기의 오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이론을 채택하였으며 결핵의 전파를 막기 위해 격리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대 플리니우스가 저술한 박물지에는 '고대의 치료가 환자의 영양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되어 있다.

 

1689년~1880년

 

의사 리처드 모턴에 의해 폐결핵이 혹('tubercles')과 관련이 있음이 규명되었으나, 결핵은 그 증세가 다양하여 1820년대까지는 하나의 병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1839년이 되어서야 J. L. Schönlein에 의해 'tuberculosis'로 명명되었다. 

 

첫 번째 결핵 요양원은 헤르만 브레머가 1854년 독일 Görbersdorf(현재는 폴란드 Sokołowsko)에 문을 열었다.

 

결핵은 도시 빈민의 고질적인 질병으로 우려를 확산시켰으며 1815년 영국에서 네 명 중 한 명이 결핵으로 죽었다. 프랑스에서는 1918년까지 여섯 명 중 한 명이 결핵이 원인이었으며 20세기에는 약 1억 명이 결핵으로 죽었다. 1880년대에 전염성임이 규명된 후, 영국에서 결핵은 신고대상질병이 되었다. 공공장소에서는 침을 뱉지 않는 캠페인이 있었고, 감염된 빈민은 감옥과 유사한 요양원에 들어갔다. 중상류층을 위한 요양원은 신선한 공기와 보살핌, 치료가 제공되는 최상의 조건에서도 요양원에 들어간 사람들 중 50% 5년 내로 사망하였다.

 

1882년~1905년

 

결핵을 발생시키는 간균인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 1882 3 24일 로베르트 코흐가 발견하였다. 이 발견으로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으나 코흐는 소와 사람의 결핵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감염된 우유를 감염원으로 인식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후에 저온 살균 공정에서 제거되게 되었다. 1890년 코흐는 결핵에 대한 치료로써 결핵균의 글리세린 추출물을 발표하면서 이를 '투베르쿨린(tuberculin)'이라 불렀다. 투베르쿨린은 치료에 효과가 없었으나, 후일 증상을 보이기 전의 결핵 검사에 채택되었다.

 

1906년~1913년

 

결핵에 대한 성공적인 백신은 1906년 알베르 칼메트와 카미유 게랭이 약화된 소의 결핵으로부터 개발한 것이 최초이다. 이는 'BCG'(Bacillus Calmette-Guérin, 칼메트와 게랭의 간균)로 불렸고, 1921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사람에 사용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 후에야 미국, 독일, 영국 등에 널리 채택되었다.

 

크리스마스 실의 홍보는 1904년 결핵 프로그램을 위한 모금을 위해 덴마크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1908년에는 미국폐결핵협회( National Tuberculosis Association)에 도움을 주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으로 확장되었다.

 

미국에서는 결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어 타구(唾具) 외에는 공공장소에서 침 뱉기를 금지하는 운동을 하였다.

 

유럽에서는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가 1850 10만 명 중 500명에서 1950 10만 명 중 50명으로 줄어들었다. 공중위생의 향상은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에도 결핵을 줄이고 있었지만 결핵은 여전히 공중위생의 큰 적으로, 1913년 영국의 의학 연구 협의회가 구성되었을 때, 첫 과제가 결핵의 연구였다.

 

1946년~1950년

 

1946년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이 개발되고 나서야 유효한 치료가 가능해졌다. 그전에는 요양원 외에 가능한 유일한 치료는 외과 수술이었으며, 기흉이나 충전법(充塡法) 기술과 함께 기관지경술과 흡입이 사용되었다. 효과가 적어 1950년대까지 대부분 중지, 다제내성 결핵의 출현으로 수술을 이들 감염의 치료의 일부로 다시 도입하게 되었다. 외과적으로 감염된 혹을 제거하는 것은 폐내 세균의 수를 줄이고, 남은 세균들이 혈류 내의 약제에 더 노출되게 해서 화학요법의 효과를 늘릴 것으로 여겨졌다.

 

1980년 이후

 

결핵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1980년대에 약제 내성을 갖는 변종이 대두하였다. 영국 내 결핵의 발생은 1913년 약 117,000명에서 1987 5,000명으로 떨어졌으나, 다시 증가하여 2000년에는 6,300, 2005년에는 7,600명에 달하였다. 미국 뉴욕 시는 공중 보건 설비의 제거와 HIV의 등장으로 1980년대 후반에 결핵이 다시 증가하였다. 치료를 마치지 못하는 환자 수가 많아 뉴욕 시는 2만 명이 넘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에 대응해야 했다.

 

결핵의 재기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993년 세계적인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매년, 전 세계적으로 거의 50만 명의 새로운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발생한다.

 

결핵의 역사

 

결핵은 고대로부터 인간 세계에 존재해 왔으며 가장 오래된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은 약 17,000년 전의 북아메리카 들소의 뼈에서 발견되었다. 결핵이 소에서 유래하여 인간에게 옮긴 것인지, 또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파생되어 다른 종으로 전염된 것인지는 현재까지는 명확하지 않다. 결핵균(M. tuberculosis)이 우결핵균(M. bovis)의 직계 후손이 아닌 것은 명확하며,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동지중해 신석기 정착지 인골에서 선사시대(BC 7000)에 사람이 결핵에 걸린 증거가 있으며, 결핵성 부식이 미라의 등뼈에서 발견되었다. 'Phthisis'(소모성 질환)는 결핵에 대한 그리스 말이었다. 기원전 460년경, 히포크라테스가 'Phthisis'를 당시 가장 널리 퍼진, 피를 토하고 열이 나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치명적인 질병으로 확인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이른 결핵의 증거는 파라카스 문화(B.C.750~A.D.100)와 관계가 있다. 북아메리카의 선사시대의 유골들은 이 병이 흔하여 선사시대 후기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결핵에 노출되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낭만주의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결핵을 천재성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창백한 피부, 피 묻은 손수건, 붉은 뺨을 예술적 열정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1800년대 초까지 결핵으로 유럽 인구의 1/4이 죽었으며 원인을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상사병이라고 불렀다. 1882년 코흐에 의해 결핵균이 알려지자 결핵은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균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결핵 및 나라별 현황 

 

일제강점기의 결핵

 

일제강점기 초기의 조선 내 결핵 환자는 비교적 적었으며 1925년에는 약 11,900, 조선인은 8,238, 목축업 상업 교통 업자가 가장 많았다. 당해 조선인 결핵 환자는 3,100명이 사망, 조선 나병 환자에 비해 결핵 환자가 적다는 점이 주목받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에 조선 내 결핵 환자가 매년 3천 명씩 증가되었고, 1927년에는 셔우드 홀이 결핵 환자를 위한 첫 요양원 '해주구세요양원'을 건립하였다.

 

1930년대에 결핵 환자는 함경도에서 36,100명에 이르렀고, 1932년 겨울에는 조선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이 판매되었다.

 

1936년에 조선 내 결핵환자가 45만으로 발표, 조선총독부 경무국 위생과에서는 조선의 결핵예방법령을 실시하고 결핵예방협회를 설치하여 전 조선적인 폐결핵 예방 운동을 계획하였다. 66~8일에는 '결핵예방주간'으로 지정하여 객담 검사, 상담소 개설, 강연회 등 여러 행사를 개최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는 농촌에서도 결핵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북한

 

2010년대 초반 북한에는 약 12만여 명의 결핵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20103월 기준으로, 북한의 결핵 환자 발생 수는 남한의 3.9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한민국

 

결핵은 대한민국의 법정전염병으로, 1960년에 환자 수 80만으로 조사되었고, 이후 전체 인구에 대한 환자 수는 감소했으나 인구 증가로 1980년대 중반까지 환자 수 80만이 유지되었다. 1990년에 72, 1995 62, 1996 43만으로 환자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2010년에는 17만 정도로 파악되었다. 다만 감염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는 연간 35,000여 명씩 발생하고 있으며, 이중 2천여 명이 사망한다고 보고되었다. 약제의 남용으로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2009년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전염병으로 보도되었다.

 

다른 동물의 결핵

 

결핵은 포유류에 의해 전파될 수 있다. 고양이나 개와 같은 길들여진 종은 일반적으로 결핵과는 무관하나, 야생 동물들은 전파할 수도 있다.

 

소결핵균은 소의 결핵을 유발하며 소와 사슴의 무리에서 소결핵을 박멸하기 위한 노력이 뉴질랜드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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